세상에 일부 특정 인물만의 잘못인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정치, 우리의 현실을 아우르는 큰 틀/관점 공유

안희정의 '쉴 새 없이 치른 댓가'

I라고봐 2024. 5. 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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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피해자로서의 김지은씨를 조롱하거나 법원의 판결을 무시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분에게는 공감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가해자인 안희정씨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조차 외면당하고, 법에서 정한 죄값 외에도 많은 일을 겪는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공감을 표시하거나 지지해주는 이들마저 없었을 것이기에 나 한 사람 정도는 인간 대 인간으로 그를 안타까워해줘도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한 쪽에서는 반역으로 정권을 잡고 수백명을 학살한 전두환에게도 잘한 점이 있다며 공감해주고, 다른 한 쪽에서는 미군을 포함해 수많은 남성들의 나체사진을 돌려보며 신상정보까지 공유한 범죄자 집단에도 우물쭈물 잘못했다 말 한 마디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나라 아니던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되기까지

 
대한민국 충청남도에서 나고자란 안희정은 2018년까지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능력과 인기를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김덕룡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던 그는, 이후 노무현의 사람이 되어 노무현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당(당시 당명: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왔고, 이후 노무현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출처: 딴지일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그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지만,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정책적으로 노무현의 동반자였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캠프 운영도 이끌었던 그는, 대선 자금을 관리하던 중 1억 6천만원을 자신의 아파트 중도금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결국 1년 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후 가석방이 아닌 "만기출소"로 세상에 나왔다.
 

불법 대선자금도, 그 중 일부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1억 6천만원을 아파트 중도금으로 썼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 만기출소를 한 사람이 있는데,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의 장모는 수백억원어치의 잔고증명을 위조해 사기에 이용해도 가석방되고, 노무현에 1억 시계 루머를 퍼뜨려 집요하게 조리돌림하다 결국 죽게 만들고는 정작 본인은 뒤로는 밝혀진 것만 수백억원을 해먹은 이명박이는 사면을 받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결코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출처: 오른쪽 신호 포착 기능은 아예 사라졌고, 왼쪽에서 오는 신호만 증폭해서 수신하는 기능을 가진 동아일보.

 
 

노무현과 2002년 대선에서 맞붙었을 당시 1000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대한민국 기업으로부터 트럭 째 빼돌리다 발각되었던 국민의힘 (당시 당명 한나라당) 이회창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에는 윤석열과 한동훈이 포함되어 있었다.

 
 
만기출소 후에야 비로소 사면복권된 안희정은 이후 2008년에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있다가 2010년 6월에 있었던 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시장, 도지사 등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및 교육감과 지역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에 충청남도 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리고 임기 4년 내내 뛰어난 도정 능력을 발휘하며 민선 5기 공약이행 평가에서 광역자치단체단 중 말 그대로 최고 평가를 받고, 재선에 성공한 뒤에도 이같은 평가를 놓치지 않았다. 
 

 


 
 

대선 도전 선언 - 귀를 막은 무지성 공격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인식했던 안희정 

 
탄탄한 행정능력과 노무현의 최측근이라는 배경이 맞물리면서 그는 민주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들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리고 실제로 충남도지사 재선임기 3년차이던  2017년에 공식적으로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단순히 능력이나 외모(흔히들 외모로는 중화권의 모 액션배우와, 인기로는 국내 아이돌과 비교하곤 했다) 뿐 아니라, 이미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국내 정치의 진영싸움에서 그가 가진 시각에 유권자들이 어느 정도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의 측근이자 진보진영이라고 하기에는 국가의 의무를 상대적으로 작게 인식하는 성향이 있었는데, 의외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에게 배척당하는 게 아닌, 양쪽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개인적으로 그런 관점에 100% 동의하지는 않고,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갑론을박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칭'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 그의 시각은, 비록 그의 정치적 성향과 일치하는 정책들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실제로 필요한 만큼의 속도를 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사회가 제정신을 차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그 무엇보다 훌륭한 시작이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출처: SBS

 
 
그는 또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면서도, 많은 지지자들이 가지는 '반대 의견을 완전히 배척하고 묵살하는' 태도에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즉, 어느 쪽이든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잘못된 관계, 그리고 다른 '증언' 다른 '무게'

 

그러나 대선 출마 선언으로부터 1년 후, 그의 남은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
 
2018년 3월 5일, 그가 자신의 수행비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는 내용이 JTBC에서 보도된 것. 안희정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은 안희정이 자신을 2017년부터 8개월 동안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이 보도되고 바로 이튿날, 안희정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라며 사과 메시지를 올렸다. 
 

 
 

같은 날, 그가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은 발빠르게 그를 출당 및 제명시킨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유죄, 그리고 복역

1심에서 안희정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여성이 상대방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하였음에도 자신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안희정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1심 판결문 중에서 -

 


 
 
그러나 그가 사과문에 쓴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걸까? 이듬해인 2019년 2월 1일에 있었던 항소심에서 법원 (홍동기 부장판사) 은 10가지의 공소 내용 중 9가지를 유죄로 보았고, 이에 안희정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두 인물 사이의 텔레그램 메시지 등 많은 정황 증거들을 들어 안희정의 당시 부인인 민주원씨(언론보도에 의해 안희정의 복역 기간 중 협의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 주변 인물들이 일방적 성폭행이 아닌 불륜 의심에 힘을 실었으나, 해당 항소심에서 최종적으로 안희정의 혐의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피감독자 간음", "강제추행"이 적용되었다. 
 
항소심에서 상반된 두 주장, 즉

  • 각종 메신저에서 확인된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내용 및 김지은이 안희정의 숙소에 한밤중에 자의로 들어온 점, 숙소를 인근으로 잡은 점 등을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한 피의자 안희정 측의 주장과
  • 충청남도 도지사이자 자신의 직속상관이라는 지위 때문에 강압을 느끼고(업무상 위력)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기 때문에 유죄라는 김지은 측의 주장

중 안희정 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지은 측의 주장은 내용의 일관성을 이유로 "신빙성이 있다"고 보았고, 메시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성범죄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최종적으로 "피고인 측이 제시한 이유만으로는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안희정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안희정은 그 날 법정구속되었다. 

(안희정 측은 2심 판결 후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민주진영에서는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역풍이 불까봐 어느 누구도 해당 사건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조차 언급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를 지지하던 이들도 빠르게 그를 손절했다. 야당이었던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은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척 하면서 수면 아래에서는 그들의 수십년된 특기를 살려 갖은 멸칭을 써가며 안희정과 민주진영을 조롱했다.

그나마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희정의 유죄 판결을 두고 사회를 휩쓴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며, 판결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안타까움을 보였을 뿐이다. 

 
 


설상가상

이 판결로 안희정씨는 향후 공직자선거법( 공직선거법과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에 의해 형의 집행이 종료된 시점부터 10년간 정치인으로서 선거에 출마할 권리, 즉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그의 주민등록상 나이가 1965년생으로 58세임을 감안할 때, 10년 후에 새롭게 재기를 하려 한다 해도 이미 70에 가까운 나이이기에 사실상 커리어의 현재와 함께 미래도 매우 불확실해진 셈이다.
 

출처: 케이스노트

 
 
 
징역형과 별개로, 피해자 김지은은 안희정이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던 2020년 7월 2일,  "안 전 지사의 범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발생하는 등 피해를 봤다"며 안희정과 충청남도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020년 7월 4일, 안희정은 옥중에서 모친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 후인 2022년 3월에는 마찬가지로 옥중에서 부친의 부고를 접한다. 
 
2022년에는 언론보도를 통해 2021년에 부인 민주원씨와 옥중 이혼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아직 죄값을 더 갚으라는 세상

 
 
2022년 8월 4일, 그는 여주교도소를 나왔다.
 
수백억원어치의 잔고증명 위조를 한 최은순처럼 가석방도 아니고,
노무현을 1억 시계 루머로 죽게 한 후 본인은 밝혀진 것만 수백억을 해먹은 이명박이처럼 사면도 아닌,
 
만기를 채운 출소이다.
 
(날짜가 7월 31일이 아닌 이유는 옥중 2020년 7월 있었던 모친상과 2022년 3월 부친상을 이유로 안희정씨가 당시 형집행정지를 신청해 임시 석방되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력 대선주자였다가 이제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해 정치인으로서 사실상 재기마저 어려워진 그에게 아직 더 갚을 죄값이 있었던 모양이다. 앞서 김지은이 제기했던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지난 24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난 것.
 
이 판결은 안희정에게 충청남도와 함께 김지은에게 8347만원을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안희정씨는 형법상으로는 이미 그의 행위가 범죄로 인식되었으며, 그 댓가를 치렀다. 그리고 법원에서 선고한 댓가 외에도 많은 값을 치렀다.
 
출소한 그에게 추가적인 사회적, 인격적 응징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아직은 눈에 띄지는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종종 집단에 따라서 죄를 죄라고 말도 못하는 사회에서, 만에 하나 만기출소하고 손해배상 책임도 지게 될 안희정에게 추가적인 비판을 가하고 사회적으로 고통을 주려 한다면 이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부당한 사적제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시도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고난이었을 것이고, 가해자 역시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해자/범죄자가 무슨 힘든 시간 타령을 하냐고 하지는 말자. 정해진 만큼의 벌을 받았으면 다시 시작하라고 형법이 존재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적어도 주어진 값을 치르며 묵묵히 지난 시간을 견딘 그에게 과거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모두에게 허락되는 미래에 대한 기대는 안희정에게도 허락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번 손배해상 청구 일부 패소 판결이 안희정에게 마지막 고난이기를 바라고, 이제 무엇을 시작하든 어떤 형태의 나쁜 감정도 모두 버리고 시작하기를, 그를 지켜본 국민으로서, 유권자로서, 그리고 '분노는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결국은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바란다.
 
 

법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적 고생이 언젠가 끝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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