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이어서
전세사기 구제 1부 - (쓰다보니 삼천포) 국가의 의미란?
전세사기 구제를 둘러싼 여러 의견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시작으로 우리가 지금 전세사기라고 부르는 것과, 가장 최근에 이 전세사기 때문에 희생된 분의 상황을 돌아보며 국가의 의미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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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의 내용은 지난 5월 1일에 전세사기로 인한 8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대구의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 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정의당 대구시당 한민정 위원장님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8번째 희생자
국가가 외면해야 한다는 전세사기, 그 8번째 희생자
지난 5월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대구 남구의 어느 30대 전세 임차인.
남편과 자녀까지 있던 그는 왜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 했을까?
사건의 발단은 2017년 세모녀 전세사기를 시작으로 조금씩 한국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전세사기.
'전세사기'란 201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집요하게 퍼진 "빚도 자산이다"라는 논리에, 특히 박근혜 정부 이후 주택담보비율의 갑작스러운 상향 등 부동산 투기가 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맞물리며,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자본도 없는 이들이 연이은 대출을 통해 수십에서 수백채의 집을 매입하고 그 집에 전세를 들여 결국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집에 사는 세입자"를 수만명 단위로 양산한 사건이다.
8번째 희생자(이하 "A씨") 역시 비슷한 사기의 피해자로, 2019년 대구 남구 대명동의 다가구 주택에 8400만원의 보증금을 걸고 전세로 입주했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그는 근저당 상황을 2024년 2월에나 확인하게 되었으며, 후순위 계약자 위치에서 입주 당시 소액임차인 기준인 전세 보증금 6000만원도 초과한 상황이라 최후변제금 지급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전세 보증금을 완전히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해 5월 25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전세사기 특별법마저 그에게 도움이 될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다. 2023년 2월 28일 30대 남성 피해자가 실직과 (돌려받지 못한 전세 보증금에 대한) 대출 연장 거부 소식에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을 시작으로 인천에서만 4명, 서울 양천구에서 1명이 희생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통과된 전세사기 특별법은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였으나,
각각의 피해자들에게 닥친 문제는 피해자 자격 인정, 그리고 결과를 기다릴 때까지 현실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나름의 애를 쓴 전세사기 특별법: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빚투도 구제하겠다던 윤석열 정권의 "형평성" 핑계를 비껴간 특별법
尹 "$^&*^%*&, 한국사회가 몰았기 때문…국가가 안아야"
출처: 서울경제
윤석열씨가 약 2년 전, 그러니까 취임 직후 정확히 자신에게 몰표를 주었던 2030들을 지목하며 "청년들의 영끌과 빚투"를 국가가 구제해줘야 한다며 했던 말이다.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를 골자로 하는 새출발기금의 규모는 최대 30조원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규모는 약 25000건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평균 피해액은 집계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약 1억원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일괄적으로 변제한다고 할 때 (오해 말자. 어디까지나 계산을 위한 가정일 뿐이다) 필요한 예산은 4조원이 넘지 않을테니, 빚투 구제로 30조를 쓰겠다던 정권이 재정과 형평성을 핑계로 대기에는 참으로 궁색해 보인다. (대책위에서는 이 중 최우선변제금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후순위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최우선변제금 수준의 보전을 한다는 전제 하에 약 4850억원이 들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아무튼 특별법은 윤씨 정권의 걱정을 비껴갔다.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선구제 후회수"를 기반으로 하는 보증금 변제가 아닌,
- 경매/압류로 집의 명의자가 바뀌어 퇴거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경매/압류의 (1년 이내) 유예
- 경매 진행 시 대처방안 안내
- 경매 진행 시 해당 주택을 우선적으로 낙찰받을 수 있는 권리 부여
등, 경매/압류 관련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원방안과
- 보증금은 커녕 최우선변제금도 못 받는 경우 최우선변제금(일반적으로 보증금의 1/3 이내)에 해당하는 금액을 무이자로 대출해주기
- 주택 구입/전세자금 대출해주기
- 기존 전세자금 등 대출금의 만기가 도래해 위험에 처할 경우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상환기한 연장해주기
등의,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소 소극적인 지원 방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누군가 옆에서 확실히 안내해주고 적극적으로 이끌어줄 경우,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적어도 특별법 시행 후 1년 동안은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현실적인 구멍: 피해자 선정까지의 피말림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로 선정된 다음의 이야기다.
'피해자'로 선정되는 조건은 위 그림에서 보듯
-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치고 확정일자를 갖추어야 하고 (다행히도 99% 이상의 피해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 전세 보증금이 3억원 이하여야 하며 (지역 및 피해자의 여건 등을 고려해 +2억원 가능하다)
- 임대인이 파산/회생절차 개시/경매 또는 공매의 개시/임차인의 집행권원 확보 등에 해당하여 피해자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보여야 하고
- 임대인이 애초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야 한다 (임대인에 대한 수사 개시, 기망, 다수 주택 취득 등)
는 4 가지가 있다.
A씨는 4월 9일, 거주 중이던 집이 경매에 부쳐진다는 사실을 법원의 통지로 알게 되었으며, 이전에 진행했던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신청"의 결과로 12일에 국토교통부에서 "전세사기피해자'등'"으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경매 개시"의 조건을 추가하여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이의신청을 준비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걸렸을 지언정 실제로 피해자 인정을 받게 된다. 다만 그 시간이 이미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나서 몇 시간 후였을 뿐이다.
국가가 서둘러야 했던 이유
피해자들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A씨가 국토교통부의 "피해자등" 인정 소식을 접하고 "피해자"로의 인정을 위해 이의신청을 한 것은 아무리 빨라도 4월 12일 이후였을 것이다.
그냥 기다리면 되는데, 그는 3주도 채 기다리지 못하고 1일날 세상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전세사기에 대한 기사를 보는 일반 국민 입장과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은 당연하게도 매우 다르다.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간다.
A씨는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빚투도 구제해준다던 윤석열 정권이 전세사기는 형평성에 맞지 않아 구제해 줄 수 없다며 질질 끄는 동안, 피해자들은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종종 실제로 퇴거를 종용받는 실제적인 위협에 노출된다.
피해자들이 너무나 안타까운 현재의 전세사기 상황이 아니라면, 현행법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퇴거 종용 자체는 아주 큰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법을 이보다 더 낫게 개정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전세계약이 끝나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원칙적으로는 계약은 종료되었기 때문에 퇴거 요구에는 문제가 없으며, 대신 임대인은 보증금 반환이 늦어지면 늦어진 만큼 지연된 기간에 해당하는 이자를 함께 지급하게 되어 있다. 만약 계약 기간 후에 임차인이 퇴거하지 않고 계속 거주한다면, 기존에 살던 임차인이 계속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임대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강제로 끌어낼 수는 없으나, 임대차 계약은 종료되었으므로 종료된 전세계약과 별개로 입주 기간을 새로 계산에 월세를 요청할 권리가 임대인에게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남구 희생자 A씨의 임대인은 이를 철저히 악용한 듯 하다.
목돈을 마련해 전세로 들어간 집의 임대인. "조씨"로 알려진 임대인은 알고보니 가족 구성원들의 명의로 총 14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해당 건물이 경매로 넘어간 마당에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은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임대인 "조씨"는 남구 희생자에게 월세와 관리비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인터넷 선까지 잘랐다고 한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은 요원한데, 정부는 노골적으로 "형평성" 운운하며 적극적인 구제를 거부하고 있고, 뻔뻔한 집주인이 월세를 내라고 독촉을 하는 상황.
맨정신으로 잘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결과는 우리가 지난 8일에 기사로 접했고, 아무리 기사를 보고 안타까워한들 되돌릴 수는 없다.
'까짓 거 무이자로 대출해주고 경매도 유예시킬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 좀 기다리면 되지' 하고 누군가 생각한다면, 참으로 현실을 모르는 소리이다. 지금 이 순간 독촉을 받고, 어쩌면 내일 잘 곳이 없어질 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와 그냥 지켜보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무게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힘든 상황에 내몰리면 며칠을 버티는 데에도 큰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당장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이들에게는 대책 마련이 보다 긴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합리적인 최선의 해결방안을 담게 되기를 바라며, 피해자분들께서는 부디 조금 더 힘내주시기를 바랍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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